어젯밤. 빗길을 뚫고 운전. 아니, 뚫는다기보다 부드럽게 통과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내 흐릿한 시야로는
빗줄기에 일그러진 노면의 차선을 읽기가 어려웠으니까. 서초IC에서 남부순환도로로 빠진 뒤부터 음악을
틀었다. 그 전에는 빗줄기가 자동차의 지붕을 두들기는 소리만 들었다. 교량 아래를 지나갈 때 일순간
정적이 일었다가 교량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채찍이 되어 지붕을 후려친다.
Venom의 라이브를 틀고 불륨을 높였다. The Chanting of The Priests, Nightmare, Satanachrist,
Black Metal 등등의 곡들. 남부순환도로에서 고가를 탈 즈음에는 빗방울 떨어지는 것이 그쳤다.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여니 후덥지근한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어젠 오후 내내 삽질을 하며 맡았던
냄새.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회의장을 향해 걸으면서 맡았던 그 두터운 공기의 냄새.
(오전으로 앞당겨진 회의 시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갔다가 헛물만 켰다. 이번이 두번째. 부주의한
성격이란 게 이런 데서 드러난다 - 어쨌거나 회사에선 대단히 꼼꼼한 사람처럼 인식되고 있는데 기분이
묘해지는 일이다)
<블랙 달리아>를 뒤적이며 대사를 곱씹는다.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그로칼랭>이
옆에 있다. 왼편에. 오른편에는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짐 콜린스가 작년에 낸 책에 1년이
다 되어서야 나왔군. 무책임사원, 밀레니얼 제네레이션, 글로벌리티, 뇌 속의 인간 인간 속의 뇌, 순수 박물관,
우연히 들어가는 공은 없다, 등등.
자동차 문을 잠그고 나올 때 선물받은 지갑을 선물한 사람의 핸드백에 두고 왔음을 깨달았다.
방에서 혼자 맥주를 마셨다. 캔 세 개, 병 두 개. 차 안에서는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지만 방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보고 서핑을 했다. 불도 끄지 않고 잤다. 아침에는 치즈케익을 한 덩이 먹고
카페인과 녹차 정제를 한알씩 먹었다. 어느새 비는 다시 내리고 있구나. 나가야 한다. 그런데 언제.
지난달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카우보이 쿠키. 백만년만의 베이킹이었다.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반죽을 두 덩이
만들어 냉동시켜 두었는데, 어제 그 중 한 덩이를 구웠다.
그런데 카메라 날짜 설정이 어떻게 된 거지. 4월7일로 찍혀 있다.
카우보이 쿠키는 텍사스 지역에서 경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다는 전통 쿠키라고 한다. 오트밀, 피칸, 코코넛, 초콜릿이
들어간다. 전부 텍사스 지역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코코넛과 초콜릿은 좀 생뚱맞아 보이긴 한다. 내가 만든 쿠키에는 발로나
과나하를 썼다.
반죽에 계란이 조금 부족해서 지난번 구울 때에는 쿠키가 다소 딱딱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온도를 낮추고 좀 더 오래 굽는
방식으로 쿠키를 좀 더 연하게 만들었다.
상황.
환경.
뭐 썩 좋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 나이를 먹으며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있지만 모든 게 순탄치는 않다. 좌절과
실패를 곱씹어가며 삶을 살아왔기에 어지간한 장애물은 심드렁하게 넘어가고 있긴 한데... 어째 아케이드 게임처럼 새로운
스테이지로 넘어갈 때마다 난이도가 높아지긴 한다.
받는 것도 늘었지만... 뭐 쓰는 것도 그에 맞춰서(혹은 더?) 늘어난다. 어젠 신사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Grano에서 저녁.
독특한 전채요리와 파스타를 먹을 수 있다. 스테이크 맛도 괜찮았다. 계산서만 안 보면 된다. 가격을 생각하면 따로
후기라도 쓸 수 있도록 카메라를 갖고 가서 찍어뒀어야 했는데.
엘본 더 테이블의 저녁 코스 메뉴가 합리적인 가격은 가격이구나, 싶은 생각이다. 물론 두 레스토랑은 스타일이 완전
다른 곳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를 할 수는 없겠다. 뭐, 엘본 더 테이블은 조만간 또 가게 되겠지.
책을 고르다 에드워드 권의 요리책이 괜찮아 보여서 사왔다. 금주 신간소개에 중점적으로 다뤄진 하비 맨스필드의
<남자다움에 관하여>는 예전에 '마초의 조건'에 대해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나서 샀다. 모름지기 마초로 굴려면 월수입
500은 넘고 사랑하는 여자를 들고 100미터 정도는 달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여러 남자들이 "난 마초로 안 살 거야"라고 말해
여자들이 웃었는데...
어쨌거나 <남자다움에 관하여>는 웬 영감탱이가 헛소리를...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남자답지 못한 책이라고 해야 하나.
오전엔 책을 읽다가 UFC 경기를 봤다. 추성훈은 체력이 왜 저리 약할지, 안타깝게 지켜봤다. 브록 레스너와 셰인 카윈.
역시 디비전 I 클래스와 디비전 II 클래스의 레슬링 수준은 다르구나 싶다. 어쨌거나 레스너가 이겨서 기뻤다. 레스너는 힘만
무식하게 센 파이터가 아니라고요...
오후엔 여행에 대한 책들을 좀 읽고, <밀레니얼 제네레이션>과 시지각에 대한 책을 읽어야겠다. <광대 살리마르>는 읽다가
중단한 상태인데 오늘 자기 전에 좀 읽어야겠군.
손을 다친 것은 거의 나았다. 아직 무게를 들기에는 완전치가 못해서 유산소 운동과 복근운동 및 스트레칭 정도로 운동을 대신
하고 있다. 얼마 전 데드리프트 160kg를 돌파한 기억이 몸에 아직 생생할 때 그 기억을 확실히 근육에 새겨야 하는데...
세차를 하고 싶은데 셀프 세차장은 만원일 것 같다. 걍 내일 운전면허증 재신청하러 가면서 손세차장에 들러야겠다. 바깥뿐만
아니라 내부 청소도 좀 해야지.
굿바이 쇼핑 - 아무것도 사지 않은 1년, 그 생생한 기록 (주디스 러바인)
내가 예술작품이었을 때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순수박물관 1,2 (요르한 파묵)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파묵의 책은, 이전 책들과 번역자가 동일하다. 파묵을 읽으려고 터키어를 공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이 번역서를 택해야 한다. 루슈디의 <광대 살리마르>... 그것도 읽어야지.
금요일은 큰 일을 한 가지 끝내고 술을 마셨다. 내일 써야 하는 보고서가 4건. (뭔놈의 보고서를
1주일에 2-3건씩 써야 하냐...)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글귀 하나.
1. 분노는 정체된 상황에 변화를 준다.
2. 분노는 다른 사람에게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3. 분노는 감정의 표현이며, 감정의 깊이를 보여준다.
4. 분노는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불쾌함을 알리는 아주 솔직하고 직접적인방법일 수 있다.
5. 분노는 사람들 사이의 의혹을 제거해 줄 수 있다.
6. 분노는 더 노력하고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는 징조이다.
얼마 전 청담동에 오픈한 레스토랑 루고에 다녀왔다. 맨해튼에 있는 건데 한국에도 가게를 낸 것이라 한다.
사진을 찍는 걸 깜빡했다. 분위기나 맛은 괜찮은데, 다만 생파스타의 맛은 걍 그랬다.
누군가 생파스타에 대해 쓴 글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파스타에 들어가는 재료로 볼 때 우리나라에선
제대로 된 생파스타 맛을 보는 건 포기하는 게 좋다고 한다. 들어가는 재료, 그러니까 밀이나 계란 등의 특성
부터 반죽을 만드는 환경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면서.
뭐, 굳이 한국에서 '진짜 파스타'를 못 먹는다고 아쉬워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우리나라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난 음식이 있는데 말이다. 면 요리로 보자면, 냉면이 그럴테다. (LA에 사는 후배 말에 따르면,
"선배, 정말 괜찮은 냉면집 있으면 장사 엄청 잘 될 거예요.")
우이동 솔밭공원이란 곳에 가보려다가... 도로가 막혀서 고생했고, 빗방울이 차 유리창 위로 뚝뚝 떨어지길래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방향을 틀면 트는 대로 도로가 막혔다. 뭔일이람.
강변CGV에서 '하하하'를 봤다. 홍상수 영화는 그동안 시큰둥하게 봐 왔는데 - 별로 냉소적이지도 않고
유머러스한 것도 같지 않다는 게 내 감상이었다 - 이번 영화는 대단히 재밌게 봤다. 마무리도 깔끔했고.
담번엔 '시'를 보러 가야겠다.
차가 막힐 것을 우려해 근처에서 모히토 한 잔, VOSS 한 병, 모에 샹동 한 잔으로 수다. 금요일 밤 11시까지
일하고, 토요일 오전 내내 긴장상태였던지라 지금은 녹다운 상태. 이따가 동네 뒷산에 가볍게 올라갔다
와야겠다.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을 다 읽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젊음에 대한 욕망, 엇갈리는 갈망과 바람들이 얽혀서
치밀한 테피스트리를 이룬다. 목요일 밤에 마신 발렌타인과 맥켈란 때문에 금요일은 내내 저조한 상태였는데...
(동탄에서 천안까지 오는데 택시비가 9만원이 넘게 나왔다!) 숙취에 따른 우울과 어울리는 정조의 작품이다.
내 소설엔 없는, 품위란 것도 있고.
물론 이런 생각도 해본다... 아마 10년 전에는 이런 소설이 별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뭔가 마음을 잡아끄는
것이 없다고 했겠지.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나는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늙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에
말이다. (그런데 스물여섯에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가????? 아니 그렇진 않다... 그땐 오히려 내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막연하게 탈출을 생각했던 시기였다)
서른일 때는 서른일 때 쓸 수 있는 소설이 있다. 마흔일 때는 마흔만의...
호모포비아를 소재로 글을 생각하고 있다. (사실 구상한 건 2년 전의 일이다) 휴가 때에는 어떻게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